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갑작스러운 폭우로 경기가 중단되는 모습을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때 캐스터와 해설자는 '콜드게임'이나 '서스펜디드 게임'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두 가지는 경기의 운명을 완전히 다르게 결정짓는 중요한 규정입니다. 어떤 때는 경기가 그대로 끝나고, 어떤 때는 며칠 뒤에 중단된 시점부터 다시 시작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야구의 경기 중단 규정인 콜드게임(Called Game)과 서스펜디드 게임(Suspended Game)의 명확한 차이점을 알아보고, 어떤 조건에서 각 규정이 적용되는지 KBO와 MLB의 사례를 통해 상세히 분석해 보겠습니다.
1. 콜드게임(Called Game): 경기를 끝내는 결정
콜드게임은 심판이 악천후나 기타 사유로 더 이상 경기를 속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경기를 완전히 종료시키는 결정을 의미합니다. 이 결정이 내려지면, 그 시점까지의 기록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며 경기는 그대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모든 중단된 경기가 콜드게임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경기가 '정식 경기(Regulation Game)'로 성립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콜드게임의 성립 조건
콜드게임이 선언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5회라는 기준을 넘어야 합니다.
5회 말 공격까지 모두 종료되었을 때
양 팀이 최소 5번의 공격과 수비를 마친 상태여야 합니다.
홈팀이 리드하는 상황에서 5회 초 공격이 끝났을 때
홈팀(말 공격팀)이 이미 이기고 있다면, 5회 말 공격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4.5이닝만 진행되어도 정식 경기로 인정됩니다.
홈팀이 5회 말 공격 도중 동점 또는 역전에 성공했을 때
5회 말 공격 중에 홈팀이 동점을 만들거나 역전하는 순간, 경기는 정식으로 성립되며 중단 시 콜드게임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예: 4회 말에 비가 와서 중단)에서 경기가 취소되면, 이는 콜드게임이 아닌 노 게임(No Game)으로 선언됩니다. '노 게임'은 말 그대로 경기가 열리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어 그날의 모든 기록(안타, 홈런, 삼진 등)이 무효가 됩니다.
콜드게임 시 승패 결정
리드하는 팀이 있을 경우: 마지막으로 균등하게 이닝을 마친 시점의 점수를 기준으로 승패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7회 초에 원정팀이 득점한 후 경기가 중단되었다면, 6회 말까지의 점수로 승패를 가립니다.
동점일 경우: 무승부로 처리됩니다. (리그 규정에 따라 다를 수 있음)
2. 서스펜디드 게임(Suspended Game): 경기를 잠시 멈추는 결정
서스펜디드 게임은 콜드게임과 달리 경기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서 경기를 '일시정지'하고 추후에 중단된 상황 그대로 재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게임의 '세이브 포인트'와 같습니다. 볼카운트, 주자 상황, 아웃카운트 등 모든 것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 규정은 콜드게임을 선언하기에는 어느 한 팀에 불공평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때 주로 적용됩니다.
서스펜디드 게임의 성립 조건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는 대표적인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식 경기(5회 이상)가 성립된 후 동점인 상황에서 중단될 때
5회가 지난 시점에서 양 팀이 동점이라면, 어느 한 팀의 승리를 선언할 수 없으므로 경기를 일시정지하고 나중에 승부를 가립니다.
원정팀이 역전한 직후, 홈팀의 공격 이닝이 끝나기 전에 중단될 때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예를 들어, 7회 초에 원정팀이 득점하여 역전에 성공했는데, 7회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비가 와서 경기가 중단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기서 콜드게임을 선언하고 6회 말 기준으로 승패를 가르면 원정팀의 7회 초 득점이 무효가 되어 불공평합니다. 반대로 7회 초 점수를 인정하고 원정팀의 승리를 선언하면, 홈팀은 반격할 기회조차 얻지 못해 불공평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됩니다.
조명 시설 고장, 법적 통금 시간 등 천재지변이 아닌 이유로 중단될 때
경기장 시설 문제나 리그가 정한 규정(예: 소음 방지를 위한 야간 경기 시간제한)으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면, 이닝과 상관없이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됩니다.
3. 핵심 차이점 한눈에 비교하기
4. 리그별 규정 비교 (KBO vs. MLB)
기본적인 원칙은 KBO와 MLB가 유사하지만, 중요한 경기에서는 더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는 추세입니다.
기본 원칙: 양 리그 모두 정규시즌에서는 5회 기준, 동점 상황, 원정팀 역전 직후 중단 등 위에서 설명한 기본 원칙을 공유합니다.
포스트시즌 규정 강화: 과거에는 포스트시즌에서도 콜드게임 규정이 존재했지만, 단기전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현재는 규정이 대폭 강화되었습니다.
MLB: 2009년부터 월드시리즈를 포함한 모든 포스트시즌 경기는 어떤 상황에서 중단되더라도 콜드게임 없이 무조건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처리하여 9이닝을 모두 채우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KBO: KBO 역시 2025시즌부터 포스트시즌 경기 중 우천 등의 사유로 중단될 경우, 이닝과 점수 차에 상관없이 항상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진행하기로 규정을 변경했습니다. 이는 가장 중요한 가을야구에서 날씨 변수로 인해 승패가 결정되는 불운을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
5. 결론
콜드게임과 서스펜디드 게임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경기가 끝났는가, 아니면 이어지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콜드게임은 경기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고, 서스펜디드 게임은 쉼표(,)를 찍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규정의 핵심에는 '공정성'이라는 가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최대한 양 팀에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려는 야구 규칙의 깊은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제 야구 경기 중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이닝과 점수 상황을 살펴보며 콜드게임이 될지, 서스펜디드 게임이 될지 예측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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